GREETING
10여 년 전 한라산 영실에서 윗세오름을 오르던 중 우연히 내 눈 속으로 들어온 한라산 붉은겨우살이... 엄동설한 만물은 움츠러들고 숨죽이는 혹한의 계절, 아름다운 자태와 붉디붉은 열매로 당당하고 고결한 자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그대.....
나의 애인 붉은겨우살이.
붉은겨우살이는 제주도 한라산에 사는 기생식물로 자태만큼이나 생존방식 또한 독특하다. 일반 기생식물들과는 달리, 살아있는 나무의 살 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그 나무의 수액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겨우살이가 파고들어 수액을 전부 빼앗기고 마는 나무는 결국 자신을 겨우살이에게 내어주고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이 된다. 이 또한 냉엄한 자연의 이치란 말인가? 산다는 것의 질김인가?
겨우살이는 스스로 번식하지 못한다. 오로지 산새들을 통해서만 번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우살이는 자손 번식을 위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다. 자손을 번식하게 해 주는 산새들에게 눈에 띄는 빼어난 존재로 보여야하는 것이다. 먼저, 한 겨울 높은 산에 나뭇잎들이 다 떨어질 때를 기다려 겨우살이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잎을 떨구고 난 앙상한 빈 나뭇가지 꼭대기에 겨우살이가 새집처럼 똬리를 튼다. 새집처럼 보이기 위해 겨우살이의 가지는 Y자 형태로 좌, 우 대칭으로 자라고, 가장 나중에 자란 나뭇가지의 끝에서만 한 쌍의 잎이 돋아난다. Y자로 자라는 이유는 가지들이 겹쳐 보여 소복한 새집처럼 보이면 산새들이 새집으로 알고 그들을 유혹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겨울 눈 덮인 산속에서 새들의 먹이가 귀해질 때 겨우살이는 산새 부리 크기에 맞게 달콤한 열매를 맺는다. 그것도 새들이 열매를 쉽게 따먹을 수 있도록 Y자로된 제일 끝가지 사이에 열매를 맺는다. 자기 자손을 번식시켜주는 유일한 존재인 산새들에 대한 배려인가 싶다. 하늘을 날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새집처럼 자리하고 있는 겨우살이를 제 집으로 착각한 산새들은 추운겨울 배불리 겨우살이 열매를 먹고 다른 나무 가지에 앉아 배설을 하게 된다. 산새라고 붉디 붉은 달콤한 열매, 붉은겨우살이의 유혹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겨우살이 열매의 표피는 소화가 가능한 체리로 되어있으나, 그 속을 보면 강력한 접착력의 끈끈한 점액질이 겨우살이의 씨앗을 감싸고 있다. 체리는 소화가 되지만 점액질과 그 속의 씨앗은 소화가 되지 않는다. 이런 성질로 산새가 배설을 할 때 점액질에 둘러싸인 씨앗이 그대로 배출되어 나뭇가지에 붙게 되고, 이것이 다시 다른 나무 살 속에 뿌리를 내려 번식하게 된다. 기생식물로서의 삶이다.
겨우살이는 귀한 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귀한 약재로도 사용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항암제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나무의 모든 영양분을 다 흡수해서일까? 자신을 모두 내어준 나무의 고마움을 되갚으려하는 것일까?
이처럼 겨우살이는 매우 희귀한 존재이다. 특히, 희귀하게 붉은색의 열매를 맺는 겨우살이는 제주도 한라산 1100고지 높은 곳에 일부 서식하고 있다. 그런 한라산붉은겨우살이를 나는 나의 아름다운 애인으로 맞이하여 10여 년 동안, 엄동설한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서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 붉은 애인을 만난다는 기다림과 그리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가 없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되어야만 만날 수 있는 애인이기 때문이다. 번식을 위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세상의 모든 동,식물들은 귀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특히 내게는 추운 겨울 속 빼어난 자태와 색을 지닌 붉은겨우살이를 애인으로 맞이한 나는 행운아인 것 같다.